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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뒷담화

'브랜드 타이완'의 진화

4COINS 2010. 10. 31. 17:35


*기사 아니예요

5일 타이페이역 맞은편에 위치한 대만의 대표 전자제품양판점 노바(NOVA)는 주중 낮시간대임에도 노트북과 전자제품을 사려는 인파로 붐볐다. 진열대에 놓인 노트북들은 대만 국내 브랜드인 에이서(ACER·宏基))와 아수스(ASUSTEK·華碩)가 대부분이었다. 애플의 ‘맥북’, 소니의 ‘바이오’가 가끔 눈에 띄었고 한국 노트북은 아예 전시돼 있지 않았다. 성산전뇌(星山電腦)의 펑린(35)은 “아수스 제품은 하루에 서너 대씩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 제품”이라면서 “노트북은 대만제가 최고인 걸 누구나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누가 대만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했던가. 더 이상 대만 IT업체들은 ‘저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새 자체 브랜드를 내건 대만 IT기업들이 해외에서 욱일승천하고 있다. 중국-대만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대만 IT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 수출전선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만 아수스텍컴퓨터는 올해 하반기 처음으로 시장조사기관 IDC의 전세계 PC판매 톱 5에 이름을 올렸다. 또다른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 조사에선 1·4분기부터 도시바를 제치고 5위를 차지했지만 양대 조사결과에서 동시에 5위권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PC 메인보드 제조업체로 알려진 아수스는 2007년 200달러짜리 휴대용 PC인 ‘Eee PC’를 내놓으면서 때마침 불기 시작한 넷북 열풍을 타고 전성기를 맞았다. 3년 안에 세계 톱3 브랜드에 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같은 대만 PC업체인 에이서는 이미 전세계 노트북 시장에서 17.5%의 점유율로 1위인 휴렛팩커드(HP·18.9%)를 코너에 몰고 있다. 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9%에 그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만 브랜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대만 브랜드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고무적이다. IDC는 “PC시장 리더십의 놀라운 변화”라고 평가했다.

대만 모니터 제조업체 한스타(Hannstar·彩晶)와 전원장치 전문업체 시소닉(SeaSonic·海韻電)은 한스G, 시소닉이라는 고유 브랜드로 무장했다. 3년 전까지 일개 스마트폰 OEM 업체였던 HTC도 어느새 삼성과 LG를 따돌리고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 4위로 부상했다. 위탁생산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디자이어’와 ‘와일드파이어’로 무장한 HTC는 지난해부터 전세계 이통사에 공급하는 자사 브랜드 비율을 100% 가까이로 올렸다. 노바에 스마트폰을 사러 온 장밍쭈(23)는 “HTC와 비견되는 브랜드는 애플 아이폰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일까. 이같은 대만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세는 대만 정부의 브랜드 육성 노력이 거둔 열매다. 대만 정부는 2005년부터 ‘브랜딩 타이완’ 7개년 계획을 실시하며 ‘세계 100대 브랜드’와 동일한 선정기준으로 매년 ‘대만 20대 글로벌 브랜드’를 선정하는 등 브랜드 육성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왔다. 2012년까지 상위 5대 브랜드 가치를 각각 10억 달러 이상으로 늘리고 20대 브랜드의 총 브랜드가치는 100억달러를 넘기겠다는 것이 목표다. 허들은 코앞이다. 올해 타이베이KBC 자료에 따르면 상위 4개 업체인 에이서(PC)와 아수스(PC), HTC(스마트폰), 트렌드마이크로(보안솔루션)의 브랜드 가치는 각각 12억달러를 넘겼다. 대만 20대 브랜드의 가치총액도 2009년에 비해 7.9% 늘어난 93억6100만달러에 이른다.

‘브랜딩 타이완’은 경기불황에 취약한 하청 위주의 국가산업구조를 바꿔보려는 대만의 몸부림이었다. 대만 IT기업들은 팹리스(설계)와 파운드리(제조) 업체로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어 자체 브랜드가 없는 하청업체가 대다수다. 이 탓에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원청업체인 글로벌 기업이 기침을 하면 대만은 골병이 든다. 충격을 완화해줄 내수시장이 거의 없어서다. ‘넥서스원’을 내놓으면서 일약 유수의 스마트폰 제조사로 이름을 알린 HTC의 피터 초 회장은 “대만 제조대행업체들이 받는 수익은 너무 낮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호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대만센터장은 “아직까지 다수의 대만 기업이 위탁생산이 주가 되고 있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아 파워플레이어(시장을 움직이는 주체)가 되지 못할 경우 불경기엔 경영위기를 맞을 것이란 위기의식이 금융위기 이후 팽배하다”면서 “최근에는 기업계의 자각과 정부의 브랜드 육성 방침이 서로 맞물리면서 대만의 브랜드파워가 급격히 높아져가고 있는 추세”라고 경고했다. 특히 상위 20대 브랜드 가운데 과반수가 경쟁업종인 IT계열인 만큼 국내 브랜드파워 강화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센터장은 이어 “브랜드만 갖추지 못했을 뿐 대만 IT산업의 생산시설 및 노하우 등 기초체력은 우리보다 월등하다”면서 “DRAM을 제외한 비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전세계 IT제품의 80%를 대만이 생산할 만큼 독보적인 생산능력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기실 대만은 기본 체력에서 한국을 앞선다. 대만의 노트북 PC 생산량은 11억2383만대(2008년)로 세계 시장의 92%, 넷북의 경우 99%에 이른다. 1980년대부터 육성해온 사이언스파크들이 생산능력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설립한 공업기술연구소(ITRI)가 매년 700여건의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준다.

그런 대만에서 한국은 숙명적인 라이벌이다. 이곳의 기업인들에겐 “한국을 넘어서지 않으면 대만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깊숙히 뿌리박혀 있다. 단교의 기억이 아직 뚜렷한데다 IT를 기반으로 한 산업구조가 워낙 한국과 겹치는 점이 많아서다. 이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에까지 퍼진 컨센서스다. 대만의 성장은 곧 한국의 위기다.

PS>
대만은 6월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언론에서 차이완 시대가 열렸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당장은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 가량의 관세 부담이 줄었다지만 IT 제품은 대부분 이미 무관세다. 문제는 직접적인 대만 기업들의 직접적인 경쟁력 강화보다 중국과 대만의 협력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산은경제연구소 서정욱 파트장은 “대만은 중국에 민족적인 동질감에서 나오는 정서적인 움직임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단적으로 말해 TV회사들이 디스플레이 패널을 주문할 때 한국보다 대만 제품을 먼저 고려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어찌보면 기술격차를 벌려 극복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서적 협력이 이뤄지는 부분은 점점 더 질척거리면서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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